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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독판 김일성의 아이들'부산 시사회. [부산 부방대] . 🎉관람후기:하봉규명예교수(부경대학교, 유엔연구소)설명란에 게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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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282024
#부산부방대 '김일성의 아이들' 부산 시사회 ▪️장소: 롯데시네마 부산본점 ▪️일시: 2024년 6월 28일(일) 영화 시작: 오후 5시 ▪️관객과의 대화: 오후 6시 30분 '건국전쟁' 김덕영 감독이 만든 전 세계 17개 국제영화제 노미네이트 및 수상작 김덕영감독님게 힘을 싫어주고 손잡아주는 환영의 만남이 되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 한국 전쟁으로 남과 북에서 약 10만 명의 전쟁고아들이 발생했다. 전쟁의 상처를 치유할 능력조차 없던 시절, 남과 북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쟁고아 문제를 처리하게 된 다. 남한의 전쟁고아들이 '해외 입양'이라는 방식을 통해 유럽과 미국으로 이주했다면, 북한의 전 쟁고아들은 동유럽 여러 나라에 분산 수용되는 방식이었다. 이름하여 현지 ‘위탁 교육'이었다. 2004년부터 2019년까지 총 15년 동안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 사비를 털어 위탁교육의 역사적 현장인 루마니아, 불가리아,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 동유럽 5개 나라를 방문하여, 그동안 숨겨 져 있던 1950년대 북한 전쟁고아들의 행적을 담은 35mm 기록필름 들과 북한 전쟁고아들의 친 구이자 교사였던 동유럽 생존자 12명과의 인터뷰, 그리고 100여 장의 사진과 북에서 보낸 아이 들의 편지 50여 통의 발굴 등 집념 어린 역사 추적을 통해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자료들을 보면 서, 김덕영 감독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를 찾아 보고 싶다. ▶상영관: 롯데시네마 부산본점(서면점) 10층 10관 ▶접수:박미옥(010-6385-0181), 서인주(010-4014-2033) ☞ 영화 관람 후 감상평을 김성옥 사무처장(010-4580-1834, 19600102@hanmail.net)에게 보내주시면 몇 편을 선정하여 '부방대 위클리(Weekly)'에 실을 예정이니 많은 응모바랍니다 영화 '감독판 김일성의 아이들' GV시사회(관객과의 대화) 김덕영 감독이 만든 전 세계 17개 국제영화제 노미네이트 및 수상작 영화 '감독판 김일성의 아이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김일성의 아이들] 참관 후기 하봉규명예교수(부경대학교, 유엔연구소) 어제(2024.6.28) [건국전쟁]의 감독이신 김덕영감독이 만든 또 하나의 역작 [김일성의 아이들] 부산시사회에 참관했다. 이 작품은 김감독이 우연히 동유럽(루마니아)에 1950년대 북한인과 결혼하였으나 북한당국으로부터 강제 별거와 귀국을 당한후 홀로 살고있는 슬픈 모녀의 이야기를 듣게된 데서 시작된 한국현대사의 추적스토리이다. [김일성의 아이들]은 한국전쟁중 발생한 북한의 수많은 전쟁고아들을 소련의 주도로 동유럽에 위탁교육의 일환으로 수용했던 사안이었다. 당시 규모는 5,000명에 달했고 해당국은 폴란드, 체코, 불가리아, 헝가리 등이었다. 다시말해 스탈린이 자행했던 고려인에 대한 중앙아시아 강제이주의 재연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전쟁고아 위탁교육은 강제이주와 달리 북한(김일성)의 존재란 차이가 있었다. 즉, 전쟁고아들은 현지국의 협조속에 엄격히 통제되는 공간에서 수용되었고 이들은 함께 파견된 교사들의 감독(감시)하에 운영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위탁교육은 현지국들의 사정으로 수용시설이나 지원사항, 문화적 차이 등으로 조금씩 차이가 났고 다양한 에피소드가 발생했다. 예컨대 루마니아는 전쟁고아들에게 현지어를 가르치는 교과과정을 적용하고, 불가리아는 현지민들과 교류를 활성화한 것 등이다. 여기에는 19세기 이래 200회의 전쟁의 대륙이 된 유럽인이 보는 전쟁고아들에 대한 동정심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집단수용된 북한의 전쟁고아들은 작은 스탈린이된 김일성체제의 산물이었다. 그들은 새벽에 기상하고 김일성장군 노래를 부르며 역사(조선사)와 조선어를 배우고 체육시간을 중요과목으로하는 작은 부대(원)였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성장통을 겪는 청소년이었고 건강문제와 전쟁후유증을 앓고 있는 불쌍한 존재였다. 통제를 벗어나면 자유롭게 뛰어놀고 싶은 청소년들이였기에 현지인(청소년)과 교류는 자연스럽기도 한 것이었다. 그들이 성장하면서 이성을 찾게되고 나아가 자유를 위해 탈출하는 사례가 발생하기 시작된다. 실지로 한국전쟁의 주범이자 [김일성의 아이들]을 주도했던 스탈린은 이듬해(1953년) 사망했고 연이어 한국전쟁도 휴전으로 결정되었다. 스탈린의 사후 집권한 흐루시체프는 스탈린(일인독재)을 격하하고 집단지도체제를 주도한다. 소련의 변화는 동유럽으로 확산되고 소위 부다페스트사건 등 자유화 운동으로 나아간다. 여기서도 루마니아는 예외였다. 위탁교육이란 당초 프로젝트는 국제정치적 변화 노출된 것이다. 반면 동유럽과 달리 스탈린체제를 존속한 아시아 공산제국의 일원인 북한은 김일성의 아이들에게 새로운 조치, 즉 자유화를 차단하고 집단귀국으로 대처한다. 이미 청소년이 된 [김일성의 아이들]이 집단수용 시설을 탈출하여 현지인들을 사귀고 일부는 현지인과 결혼이나 망명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결국 위탁교육은 일부 교육생들의 조기귀국이 1956년부터 시작되었고 1959년을 끝으로 전원 귀국하게 된다. 여기에 김일성이 직접 현지를 찾게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김일성의 아이들]은 폐쇄와 명령속에 살고있는 북한주민들과 달리 위험한 존재였기에 북한은 이들을 귀국과 동지에 철저히 관리했고 핵심은 이들에 대한 격리였다. 강제귀국후 그들은 편지를 통해 현지인들에게 안부를 전하기도 했으나 곧 연락두절이 되었다. 그들의 편지를 검색하던 북한당국에 의해 모든 우편교류가 금지된 것이다. 결국 5,000에 이르는 [김일성의 아이들]은 역사상 최악이란 폐쇄와 통제된 체제인 북한에서 사라진 존재가 된다. 정치이론상 진정한 독재는 전제정이다. 전제정은 단절(격리)과 강제(통제)란 이중성을 갖기 때문이다. 또한 동시에 일인통치(왕조)란 성격도 갖게된다. 역사상 전제정은 진시황을 필두로 동양정치의 전형이었다. 한국사에도 주자학을 숭상했던 조선왕조가 대표적이다. 현대사에는 모택동과 김일성이 그뒤를 잇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모택동 사후 집단지도체제를 선택했고 탈냉전이 도래하자 개혁과 개방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반면 북한은 김일성왕조체제를 구축하여 빈곤과 아사가 만연하는 수용소국가가 된 것이다. 이제 [건국전쟁]과 [김일성의 아이들]을 통해 역사재정립이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김덕영감독과 이를 후원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갈길이 멀게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어둠이 짙어질수록 새벽이 가깝다"는 말도 있다. 이미 김일성나라(북한)의 위선(거짓)과 파국은 보편화되었고 대세는 기울어졌기 때문이다. 단지 한국이 민주화 이후 국가지도력이 총체적으로 실종되었기 때문에 이를 회복하는 것이 전제되어야할 것이다. 여기에 [김일성의 아이들]은 또 다른 [건국전쟁]인 것이다. 후자가 자유와 번영을 만든 영웅의 스토리인 반면, 전자는 탄압과 빈곤을 야기한 적(반)영웅의 스토리인 것이다. 두 작품은 거짓과 위선을 깨트리는 진리에 도달하는 다리가 되어 종국에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 2024.6.29 하봉규명예교수(부경대학교, 유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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